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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한 고려, 우수한 조선의 성스런 왕업

열등한 고려, 우수한 조선의 성스런 왕업 "고려에서는 전체 군현에 외관(지방관)을 파견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지역에 한정시켰다"_우리역사넷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3. 고려 > 1) 정치적 특성 광종이 한건 그냥 호족 상대로 연쇄살인해서 미친 살인마 타이틀 얻은 거에 불과하고 완벽하게 호족들을 싸그리 제압 못했음. 성종이 한 거는 그냥 딱 저 정도 밖에 안됨. 고려가 정말 호족 다 때려잡고 호족이 벌벌 기는 나라면  왜 조선왕조 태종이 백성이 사또 고소 못하게 하는 괴상한 법을 만들면서 지방 세력을 때려잡으려 했고 세종은 한글을 만들어서 삼강오륜 동화책을 한글로 써서 백성들에게 배포시켜 세뇌시켰겠나  조선은 성리학자들이 세운 나라이고 성리학은 아랫것이 윗사람에게 개기는걸 죄악시 한다. 그리고 조선을 세운 사람들은 성리학이 한반도의 온갖 문제를 해결할 묘책이라고 봤다. 고려 말 '왜구'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걸 보면 왜구의 80%는 고려 사람이었다고 나온다. 즉 중앙 정권에 핍박받는 고려 해변과 섬들의 어민들, 그리고 고려의 정치권에서 소외 받은 변방 해변,섬들의 호족들이  왜구랑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일 수 있다. 이성계가 죽인 전라도 지리산의 소년 왜장 아기발도도 사실 전라도 지리산에 전해오는 이성계한테 죽임당했다는 아기 장수 우투리 영웅 설화와 관련있을 수 있다. 우투리가 왜장의 '오요로이(요로이)' 갑주를 의미한다는 설이 있고, '아기 장수'에서 '장수'는 몽골 말로 '바토르' 이고 이걸 한자로 적으면 '발도' 이다.  아기 장수 우투리 , 아기 발도 우투리 , 아기 발도 요로이... 아기장수 우투리 그러니까 아기발도는 전라도 소규모 호족의 딸과 왜구 사이에 태어난 그 지역의 명망 있는 향도로서  왜구들과 읍민을 거느리고 중앙 정권이 보낸 토벌대 대장 이성계에...

제승방략과 진관제의 차이

제승방략과 진관제 차이 진관제 : 각 읍성이 알아서 방어하며 서로 도와주기  군사 통솔권은 각 읍성 성주나 각 읍성의 작은 사또들을 총괄하는 큰 사또가 알아서 한다 제승방략 : 멀컨핵. 대규모 병력을 빨리 모조리 컨트롤해서  어느 한 장소로 모이게 하거나;   군사 통솔권은 중앙에서 내려보낸 장군, 장교들이 맡음  지자체의 통솔권은 무시됨 둘 다 장단점이 있음 진관제로는 각 진관(어느 지역 읍성들의 집합)이 대규모 병력을 모으기가 힘들 수 있음 읍민들을 많이 모을 수는 있지만 수성전에선 읍성민 만으론 완벽한 방어가 힘듬 제승방략을 쓰면 여러 진관들의 병력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음 다만 그렇게 모은 수만의 병력을 벌판에 둘지 산골짜기에 둘지 어느 읍성에 둘지는 중앙에서 온 장군이나 장교가 결정하는거나 전투 지휘도 중앙에서 내려온 놈의 통제를 받으며 해야한다는게 단점 요시츠네같은 분이 오시면 되는데 미친 놈이 오면 망하는 거

잡병들한텐 투구랑 제대로 된 갑옷을 안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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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병들한텐 투구랑 제대로 된 갑옷을 안 줌 왜구 토벌하고 승전하는 명나라 승전군 그림인데. 기병과 전투병은 투구,갑옷을 입었지만 잡병들은 가죽갑이랑 두건 모자가 전부임. 고거전에서 고려는 아주 잡병들한테도 투구,갑옷 싸그리 다 입혔던데 고려가 돈이 남아도냐? 호족이 돈이 남아돌아? 잡병들 반란 일으키면....  책임 질래? 임용한 말 듣고 고거전 사극이 그리 고증하는건데 임용한이 말하길 실제 전투 그런 현장에 있으면 아군이 휘둘러대는 칼이나 창에  같은 아군이 다칠 수 있으니 투구나 투구 비슷한거라도 반드시 줘야한다 포졸 모자는 말이 안된다 이러는데 무슨 개소리야  그래서 진을 짜잖아 진을 짰는데 그딴걸 뭐하러 걱정해  잡병들은 물러나면 무조건 목을 치는거야 목 쳐야되는데 투구 쓰고있고 철갑옷 척 하고 입고있으면 목을 칠 수가 없잖아 목을 꼭 칠 필요 없고 그냥 칼 휙 휘두르면 머리가 썰려나가면 그만인데 투구 쓰고있으면 안되지. 현대전에서 철모 전부 지급해주는건 다 소중한 국민이고 민주주의인데다가 한 사람 한 사람 다 이 나라에서 교육받아온 사람들이고 나라의 소중한 '사람'들인데다가 기계식 표준화 공정에 철모들을 그렇게 생산할만한 생산력이 되니 철모를 전부 지급해주는거고. 근데 전부에게 방탄복을 지급해주지는않음. 왜. 돈이 드니까 돈이 들어도 해줘야 하는데. 수십만 현역 수십만 예비군에게 모조리 방탄복 만들어줄려면 돈이 장난 아니게 많이 들고, 그걸 또 관리하고 수선하고  이럴려면 돈이 더 더 더 많이 드니까. //  고대 중세 근세에는 지배층만 '나라 사람 (國人) '이고  농사 짓는 사람이나 노동자는 그냥 민民(눈에 칼 찔려서 앞을 못 보는 무지랭이 백성이란 뜻) 아니면 노奴임. 근데 그런 애들한테 왜 투구를 줘 왜 철갑옷을 줘  포졸 모자,두건,가죽갑옷 척 주면 감지덕지로 받아야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이순신 :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고? 당연히 국왕 전하와 성스런 ...

임진왜란 개전 초기 김여물이 전해들은 말이 왜군의 수가 무려 60만이 왔다고함.

임진왜란 개전 초기 김여물이 전해들은 말이 왜군의 수가 무려 60만이 왔다고함. 아마도 피난민들로부터 전해들은거 같은데. 우리가 사료를 통해 알기론 18만이 전부이고 거기다가 선봉대인 소서행장,가등청정은 각각 대략 2만 밖에 안되는데. 무슨... 60만...? 보통 과장이라 생각하고 넘기는데.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한산해전 관련 해서도 지금까지 국뽕 vs 일뽕 사이에 치열하게 싸우는게.. 이순신의 한산대첩 승첩 장계를 보면 안택선(대선) , 세키부네(중선), 고바야부네(소선) 에 대해 각각 몇 척을 침몰 시켰는지 소상히 적어서 이때 죽은 와키자카 수군은 무려 1만명이나 됨. 근데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 숫자는 아래 숫자 밖에 안됨. 수군(9450명) 구키 요시타카: 1500명 도도 다카토라: 2000명 와키자카 야스하루: 1500명 가토 요시아키: 1000명 구와야마 마사하루: 1000명 구루시마 미치후사: 700명 스가이 에몬쇼우: 250명 호리우치 요지요사: 850명 스기와카 덴사부로: 650명 ???? 뭐지? 이순신이 과장한건가? 아님. 저 수군은 사무라이들,아시가루들을 합친거고 투구,철삿갓,갑옷은 기본으로 갖춰져있음. 한산해전 때 뒤진 일본 와키자카 수군 1만명은.... 해적들임. viewimage.php?id=2eb2c232eec436a269b1&no=24b0d769e1d32ca73fe987fa11d028311530ea64d9e7786556fae6d72226a82f67b0ca848770ad6c39813cb56c20ef4e8bbace271bdd164458ac9823089e157c5df3 viewimage.php?id=2eb2c232eec436a269b1&no=24b0d769e1d32ca73fe987fa11d028311530ea64d9e7786556fae6d72226a82f67b0ca848770ad6c398179e03e46ef47e342e6f67aa161254e200a72388172b87f7d684ad9 viewimage.php?id=2eb...

내용 보충) 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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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보충) 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 전쟁     원글 : https://gall.dcinside.com/m/cortkvndgn/18439 대막리지 풍신수길(아마도 동남아 난민 해적의 후손일 듯 ) :인생이 한 순간의 꿈이구나. 쯔루마쯔를 이제 볼 수 있겠구나 대대로 덕천가강 : 태합 전하! 태합 전하!!!!!!!!!! 살려내라 이놈들! 어의들 뭐하느냐! 살려내란말이다! 태합전하 태합전하으으으으으으으 끼이이이이이이이  다이묘들 : 크흐흐흑 아이고 크흐흑....(저 놈이 ... 왜 저러지...? 음... 또 내전인가... ) 규슈 해적들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풍덩 풍덩  (내가 ai로 그린 그림)  (내가 ai로 그린 그림) 예수회 신부 세스페데스 : 수확에... 실패했구나..... 수확에 실패했어.. 꼬레안들을 수확하는데 실패했어... 1600 스타디온의 해가 오기 딱 1년전인데. 수확에 실패했어..... 그리스도의 적 ... 멸망의 아들 ... 아바돈의 아들 아폴리온이 나타날 동방의 땅을 경략하는데 실패했다....... 이순신 : 난 나무의 아들 십에 달린 사람의 아들 순 임금의 신하다 부형들과 내 아들을 죽인 왜노를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   모조리 다 불태워죽여라 그리하여 다시는 이 청구의 강토를 해 뜨는 곳 부상의 왜인 노비들이 결단코 넘보지 못하게 하여라 ===노량해전 테마 음악====== https://youtu.be/a6GaKDj_JLA?si=ziDcaFvNoSolMWGo&t=178 ====================== 임진왜란은 히데요시 정권과 조선 이씨 성리학 문명간의 전쟁이고 히데요시 죽자 철군했고 고니시가 철군하는척하면서 규슈에서 이미 만들어서 데리고 온 500척 배로 이순신 조지려했는데(프로이스 일본사) 500척이 노량에서 싸그리 불탔고 규슈 해적들(정규군 아님)이 무수히 불타고 빠져죽었어 히데요시랑 규슈가 진거야 당시 일본은 통일국가가 아니었고 '...

책사풍후의 꼬마어사똘이(암행어사,홍길동,타잔의 퓨전 삼위일체 캐릭터) 만화영화 리뷰

책사풍후의 꼬마어사똘이(암행어사,홍길동,타잔의 퓨전 삼위일체 캐릭터) 만화영화 리뷰  ===테마 음악==== https://youtu.be/a6GaKDj_JLA?si=r1-Dyz1R_cdTmUiy   ====================== ====관련 영상========== https://youtu.be/AuLXrJ1HHZI?si=-XiHQpkTauQ9BDGr ===================  노인 도사의 목이 날라가야 더 사실적으로 크게 다가올텐데.  애들 만화라서 그건 안되고.. 근데 일본은 애들 만화도 겁나 진지함.  일본 사람들은 잔인한데가 있음. 어린 애들도 잔인하고 진지함.  그리고 저 사무라이 대장이 너무 시시하게 나옴.  화려한 가마쿠라 시대의 투구 갑옷을 입고 저 홍길동타잔을 압도해야함.  게다가 사무라이 대장은 일본 원주민이 아니라 부여 백제의 피가 섞인  자랑스런 도래인으로 나와야함.   착하고 순수하면서 항상 조선 왕,사또,포졸에게 미움받아서  백성을 구하지못할 것이냐  아니면 화려하면서 멋있으면서 사악함에 의하여 강력한 힘을 가져서  부패한 사또와 포졸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의심 많고 항상 충신도 명장도 의심하며 홍길동을 항상 죽이려 드는  조선 왕(중국 명나라의 속국 왕. 명나라의 관모 관복을 고대로 따라입고 항상 중국 역사,중국 철학만 찾는 성리학을 숭배하는 군주)을 반으로 갈라버리고  왕씨의 원수를 갚고 노비를 해방시키고  농민이 더이상 수탈되지않게하고  전부 사무라이,아시가루로 만들어서 용맹하게 저 대륙을 정복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의 영토를 남김없이 되찾을 것이냐  거기서 주인공이 갈등하게 해야함.   그러기전까지는 그저 애들 만화이고  김대중이 일본 문화를 개방하는 순간 그저 추억의 만화란 책장에 ...

한국인은 화병으로 부글부글한 종족인가

한국인은 화병으로 부글부글한 종족인가 1. 낙랑군 대방군 = 북한 평안도,황해도  이거 못 받아들이는 인간이 엄청 많음 2. 조선총독부 <= 두고 두고 무료 사극 세트장으로 써서 반일국뽕에 이용해먹을수있는데 터트림    3. 한반도 남부 왜성들 = 복원하면 관광자원으로 두고 두고 써먹을 수 있는데 안함 화병의 근원은 그들의 조상이 노비머슴이어서이고 중뽕 성리학 군자들이 두들겨 패며 지배한 500년 성리학 강점기로 인해 정신적 쇼크가 DNA에 푸욱 박힌거..... 한국 사극에서 양반들은 좋은 이미지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음. 그냥 수구꼴통의 유교 버전 느낌으로나 나옴. 전하 아니되옵니다 즈언하아 <= 맨날 이런 이미지로만. 뭐 간단히 표현하면 그게 어느정도 맞기는한데..... 조선왕조실록에서 의병장 따위에 불과한 곽재우가 선조한테 올린 상소문 보면 존나 길고 중국 고대사,한국 고대사와 정치학과 군사학에 꽤 깊은 통찰을 가지고있음. 근데도 선조가 기용하지않음. 선조같은 명철한 성군께서 왜 그러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냥 한국은  강남스타일,오징어게임,게이팝 이런 현대 문화가 세계를 흔드는 그냥 그저 그런 나라. 일본의 뭔가 고풍스러운 이미지는 찾기 힘들고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고풍스런 이미지는 양반집 대감이 장독대에서 동치미 꺼내서 먹고 진돗개가 그 앞에서 왈! 왈! 대는 그냥 그런 이미지.....

책사풍후의 고려장의 기원 온돌의 기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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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풍후의 고려장의 기원 온돌의 기원 연구 // 조선왕조실록과 연행록에 나오는 고려장 세종 44권, 11년(1429 기유 / 명 선덕(宣德) 4년) 4월 4일(기묘) 3번째기사 구습의 오점을 고치고 인효의 풍속을 이루게 하라고 예조에 교지를 내리다 예조에 교지를 내리기를, “사람의 자식으로 부모가 살았을 때는 효성을 다하고, 죽어서는 슬픔을 다하는 것은 천성(天性)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고, 직분(職分)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것이다. 「고려 말기에 외방(外方)의 무지(無知)한 백성들이 부모가 죽으면 도리어 간사한 마음으로 즉시 그 집을 무너뜨리고, 또 부모가 거의 죽어갈 때에, 숨이 아직 끓어지기도 전에 외사(外舍)로 내어 두게 되니」 비록 다시 살아날 이치가 있더라도 마침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태백산사고본】 14책 44권 2장 A면 【영인본】 3책 174면 【분류】 *풍속-예속(禮俗) / *풍속-풍속(風俗) / *윤리(倫理) / *역사-전사(前史) 조선왕조실록 (중국 삼국지 시대 위나라의 고분 벽화의 고려장처럼 보이는 모습 ㄷㄷ) ​ ================================ 고려장 관련 우리나라 연행록의 기록  고전번역서 > 연행록선집 > 연행록 > 일기 > 계사년 > 최종정보 일기(日記) / 계사년(1713, 숙종 39) 1월 8일 [DCI]ITKC_BT_1417A_0040_030_0080_2004_003_XML DCI복사 URL복사 ​맑음. 옥하관에 체류하였다. 호인 장사치의 왕래가 날로 많아져 시끄럽고 북적북적하니 매우 괴로웠다. 《관안(官案)》을 얻어 보니, 영고탑(寧古塔)에 도통 장군(都統將軍)과 부도통(副都統) 2인이 있었고, 성경(盛京)ㆍ흑룡강(黑龍江) 등 지방에도 도ㆍ부통 3인이 있어 병권(兵權)을 전관(專管)하는 것이었다. 도원수(都元帥)가 1품이고 각로(閣老)는 정2품인데, 원래의 수는 6인이었다 한다. 그런데 현재는 5인으로 온달(溫達)이 수석(首席)이다. 품계(品階)는 좌...

황제헌원은 고조선의 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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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헌원은 고조선의 조상이지 중국인의 조상이 아니다. ============= 테마 음악 : https://youtu.be/JIr33MzfKjQ?si=jUoQ2gg0xZygZDvK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달린 위진(魏晉) 시대 주석 보면  황제헌원(黃帝軒轅 : 黃帝는 중앙 세계의 임금이란 뜻이고, 軒轅 은 글자에 차(車)가 연속되는 것으로 보아 전차의 발명과 관련된 임금인듯 하다. 실제로 황제헌원 전설에는 수레바퀴 발명도 황제헌원의 업적으로 나오며, 황제헌원의 책사인 풍후(風后)는 '지남거(指南車)'라는 신비한 전차의 발명과 관련이 있다.)의 별명이 제홍(帝鴻)으로 나오는데.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제준(帝俊)이 제홍(帝鴻)을 낳고 백민(白民)을 낳았다고 나온다.  저기서 '제(帝)'는 '임금'을 뜻하는데. 보통 임금이 아니라 외계의 임금이 인간계에 내려와서 다스리는 신인(神人). 즉 신이면서 인간인 자를 뜻하니 히브리 창세기 6장에서 그런 자들은 하늘에서 굴러떨어져 인간 여자의 배를 통해 인간으로 태어나 위대한 군주나 위대한 용사나 위대한 폭군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뜻하며 수메르 점토판엔 아눈나키 군주들로 적혀있다...! 백민은 나라 '백민국(白民國)'의 이름이며 동시에 그 나라의 백성들로 피부가 희다고 산해경에 그리 적혀 있다. 일제시대 조선 역사 연구가 안재홍은 이 백민(白民)은 바로 부여 시절 혹은 그보다 더 이전부터 흰 색을 숭상하여 흰 옷을 입은 고조선인이라고 주장했다...! 제준(帝俊)은 동이족들의 신화 세계관에서의 '하늘나라의 최고 임금'이다.  산해경에 따르면, " 제준의 아들 제홍이 백민을 낳았는데 백민白民은 나라 이름으로 백민국인데. 숙신국의 불함산(백두산) 남쪽에 있다." 이것은... 고조선(古朝鮮) ... 옛 조선 ... 옛 조선 이다!!!! 황제헌원은 고조선의 조상이다. 고조선의 조상은 환웅이다. 그...

왕건의 한사군 계승 의식 사료

왕건의 한사군 계승 의식 사료 ======테마 음악=========== https://youtu.be/JIr33MzfKjQ?si=HwiTJKLsJAWNSJYW ====================== "전 주인(前主 : 궁예 ]는 4군(四郡)이 흙 무너지듯 무너지는 때를 맞아 도적의 무리를 제거하고 점점 영토를 넓혀갔다."(前主當四郡土崩之時, 剷除寇賊, 漸拓封疆. ) .... 이에 〈더하여〉 함부로 연호(年號)를 정하고 황제라 일컬었으며[稱尊] 처자를 살육하였으니,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하고 귀신과 사람이 함께 원한을 품어 왕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추락시켰으니[荒墜厥緖]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 於是, 竊號稱尊, 殺妻戮子, 天地不容, , 神人共怨, 荒墜厥緖, 可不戒乎?   )_고려사 태조 세가의 왕건 즉위 조서 왕건은 후삼국 시대가 벌어지던 한반도를 '4군(郡)' 즉 한무제의 한漢 사군四郡으로 봄. 그리고 여기서의 도적은 민란군이라기보다는 호족으로 보는게 한국사학계의 정설.  왕건은 궁예가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일컫고 처자를 살육한걸 궁예의 죄악과 자신의 반역의 명분으로 주장함.  (결국 궁예가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일컫는 행동들이 궁예의 부인이자 큰 후원자였던 신천 강씨와 두 아들을 등 돌리게 한 듯함. 신천 강씨 부인의 호족 가문 신천 강씨는 중국에 조공 바치는 무역에서 큰 짭잘한 이익을 보던 듯한데. 그걸 못 하게하고 오히려 거란 중심 무역을 하니 개빡친듯하다. 궁예가 거란에 사신 보내 보검 선물한게 서기 915년인데. 신천 강씨가 궁예 보고 도리 거스르는 짓 그만하라고 심하게 따진 것도 서기 915년의  일이다. 이에 궁예가 반발하자 신천 강씨와 두 왕자가 반란을 일으킨 듯 하다.  근데 독자적 연호를 정하고 황제를 일컫는건 왕건도 하던거다. 그러나 왕건은 중국에 조공하고 책봉받았다. 이것이 궁예와는 다른 것이다. 궁예는 중국에 단 한번도 조공하지도않고 책봉을 구걸하는 사신도 보내지 않았다....

거란은 현토군을 계승한 고려 왕씨를 혼쭐내기위해 정의로운 정벌을 한거

 거란은 현토군을 계승한 고려 왕씨를 혼쭐내기위해 정의로운 정벌을 한거 거란의 조상은 선비족 혹은 비려족으로 광개토 시절 광개토의 정벌전에 항상 따라다니던 광개토 정벌군 보,기 5만의 다수를 차지하던 자들이다.  거란 황족 야율씨는 고구려 왕족 고씨의 후예다 발해를 따먹을 권리가 충분히 있고  현토군 계승 주장하는 병신 고려 왕씨를 밟을 권리가 있다. 고려사 보면 거란 성종은 고려로 쳐들어왔을 때 고려 농민들을 잡아서 비단 옷을 입혀서 잘 대해줬고 , 요사 성종본기,소배압전,야율분노전 보면 거란 성종은 고려 수도 개경을 함락 후 백성을 위로하고 궁궐을 불살랐다 나올 뿐 개경 백성을 학살한 기록은 없다. 개경 양반을 죽이면 죽였지 불쌍한 민초는 건드리지 않았다.  근데 개경 양반 죽였다는 근거도 없음. 고려 지방 호족들은 거란보다 고려 왕 왕순이를 더 미워하고 증오함. 그리고 귀주대첩 이기자마자 고려 왕 왕순이 잽싸게 사죄문 바치고 조공 바치게해주십시오하고 빌빌대서 거란 성종이 오냐 해서 전쟁 끝남.

왕건이 국호를 고려라고 한 이유는 현토군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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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이 국호를 고려라고 한 이유는 현토군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수서 배구전 보면 배구가 말하길 고구려는 본시 고죽국이며 한무제가 세운 현토군이라 했고 ============ "전 주인(前主 : 궁예 ]는 4군(四郡)이 흙 무너지듯 무너지는 때를 맞아 도적의 무리를 제거하고 점점 영토를 넓혀갔다."(前主當四郡土崩之時, 剷除寇賊, 漸拓封疆. ) .... 이에 〈더하여〉 함부로 연호(年號)를 정하고 황제라 일컬었으며[稱尊] 처자를 살육하였으니,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하고 귀신과 사람이 함께 원한을 품어 왕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추락시켰으니[荒墜厥緖]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 於是, 竊號稱尊, 殺妻戮子, 天地不容, , 神人共怨, 荒墜厥緖, 可不戒乎?  )_고려사 태조 세가의 왕건 즉위 조서 ============ ================= "🌕 장흥長興 3년(A.D.932; 高麗 太祖 15) 에 권지국사權知國事註 013 왕건王建이 사신을 보내오니,  [후당後唐] 명종明宗은 즉시 건建을 현토주도독玄菟州都督으로 제배除拜하고, 대의군사大義軍使에 충임充任하는 동시에 고려국왕高麗國王으로 책봉하였다.註 014  [王]건建은 고려高麗의 대족大族이다.註 015 🌕 至長興三年(932)校勘 007 , 權知國事註 013王建遣使者來, 明宗乃拜建 玄菟州都督, 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校勘 008註 014. 建, 高麗大族也.註 015" " _신오대사(新五代史)   >   사이부록(四夷附錄)   >   고려(高麗)    ================ 왕건의 즉위 조서도, 후당이 왕건을 책봉하는 조서에도 한결같이 한사군이나 현토군을 강조하고있다. 왕건이 고려(=고구려)의 대족이라는 소리에 낚여서 왕건을 고구려 순혈 오리지널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하지마라... 후한서 왕경전 보면 기원전 177년 제북왕 유흥거의 난 때 한나라 산동반도를 떠난 중국 왕씨 가문이...

왕건의 조상 낙랑 왕씨 장회무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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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건의 조상의 역사 왕건의 왕씨는 낙랑 왕씨다. 낙랑 왕씨는 기원전 177년 제북왕 유흥거의 난 때 산동반도를 떠난 왕씨 가문이 위만조선의 수도인 낙랑 땅에 정착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을 설치했을 때는 한나라의 통치에 적극 협력해 낙랑의 주요 호족으로 성장한다. 기원전 50년 쯤부터는 중국 산동반도의 영향을 받아 귀틀무덤이라는 새로운 묘제를 사용하며 화려한 부장품들을 묻는다. 서기 23년 왕씨로 창씨개명했던 고조선 원주민 왕조(王調)가 낙랑태수 유헌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중국계 낙랑 왕씨는 왕조에게 협력하다가  7년만에 요동에서 토벌군이 오자 왕조를 죽이고 목을 잘라 요동태수 왕준에게 척하고 갖다바친다. 그 후에도 중국계 낙랑 왕씨는 다시 낙랑 땅의 주요 호족의 위치를 계속 유지한다. 그들은 중국 황제의 한반도 통치를 도와 중국 황제가 진정한 임금으로 천하에 우뚝 설 수 있게 해주는 적극적인 협력자들이다. 작제건作帝建 .... 임금을 만들고 세우는 자 ..... 그 자체다! 그들은 장사꾼들이고 음험한 모략가들이며 암살에 능수능란하다. 서기 313년 고구려 왕 을불리(미천왕)가 낙랑,대방을 먹자 낙랑,대방의 왕씨 호족은 반은 고구려에게 협력하는가하면 다른 반은 만주 서쪽 요서 땅의 모용선비에게로 도망친다. 모용선비 대선우 모용외는 요서에 낙랑군,대방군을 새로 만들고 왕(王)씨,장(張)씨(얘들도 낙랑대방계 중국 호족이다.)를 요서의 낙랑,대방 군현 관리자들로 임명한다. 광개토,장수왕,타브가치 선비족(=훈육=북위)에게 격파당해 멸망한 모용선비... 주인 모용선비를 잃은 개새끼들인 낙랑 대방 왕씨들,장씨들은 울며 북위에게 투항하거나 배 타고 백제로 간다.  이들은 북위나 백제에서 주요 요직에 임명되고 거기서 다시 힘을 모은다. 서기 930년 견훤의 후백제와의 고창(지금의 안동)전투에서 승리하여 크게 사기가 오른 고려는  고창 지역 등 신라 호족들의 지지를 더욱 더 끌어모으기 위해서인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