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이 국호를 고려라고 한 이유는 현토군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왕건이 국호를 고려라고 한 이유는 현토군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수서 배구전 보면 배구가 말하길 고구려는 본시 고죽국이며 한무제가 세운 현토군이라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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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인(前主 : 궁예 ]는 4군(四郡)이 흙 무너지듯 무너지는 때를 맞아 도적의 무리를 제거하고 점점 영토를 넓혀갔다."(前主當四郡土崩之時, 剷除寇賊, 漸拓封疆. )
.... 이에 〈더하여〉 함부로 연호(年號)를 정하고 황제라 일컬었으며[稱尊] 처자를 살육하였으니,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하고 귀신과 사람이 함께 원한을 품어 왕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추락시켰으니[荒墜厥緖]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 於是, 竊號稱尊, 殺妻戮子, 天地不容,
, 神人共怨, 荒墜厥緖, 可不戒乎?
)_고려사 태조 세가의 왕건 즉위 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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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長興 3년(A.D.932; 高麗 太祖 15) 에 권지국사權知國事註 013 왕건王建이 사신을 보내오니,
[후당後唐] 명종明宗은 즉시 건建을 현토주도독玄菟州都督으로 제배除拜하고, 대의군사大義軍使에 충임充任하는 동시에 고려국왕高麗國王으로 책봉하였다.註 014
[王]건建은 고려高麗의 대족大族이다.註 015
🌕 至長興三年(932)校勘 007 , 權知國事註 013王建遣使者來, 明宗乃拜建 玄菟州都督, 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校勘 008註 014. 建, 高麗大族也.註 015" "
_신오대사(新五代史) > 사이부록(四夷附錄) > 고려(高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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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즉위 조서도, 후당이 왕건을 책봉하는 조서에도 한결같이 한사군이나 현토군을 강조하고있다.
왕건이 고려(=고구려)의 대족이라는 소리에 낚여서 왕건을 고구려 순혈 오리지널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하지마라...
후한서 왕경전 보면 기원전 177년 제북왕 유흥거의 난 때 한나라 산동반도를 떠난 중국 왕씨 가문이
위만조선의 중심지 낙랑 땅에 와서 정착하고,
기원전 108년 한무제의 위만조선 정벌과 식민지 낙랑군 설치 후에는, 낙랑의 왕씨 호족은 적극 한나라 통치에
협력했고,
그 왕씨의 후손이 바로 왕건이 이 추악한 반역자 놈이다....
왕건의 머리 속엔 원시적인 민족주의는 커녕 최치원의 마한=고구려 이런 사상도 없다.
왕건의 머리 속에선 현토군=고구려=고려 다.
왕건은 사대주의자다. 왕건이 황제를 칭한건 지방정권들인 호족들 위에 군림한 중앙 정권이 되기위해서다.
즉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황제를 칭한거지.
궁예처럼 자주적인 나라를 세우기위해 황제를 칭한건 아니다.
왕건이 거란이 보낸 낙타들 굶겨죽이고 거란 사신들을 유배보낸 것도 발해 원수 갚기 위해서라는건 순 어거지 변명이고
궁예가 중국에 조공 책봉 구걸하는 사신을 전혀 보내지않고 오히려 거란에 보검을 선물해서 북방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요서 중심의
무역 루트를 개척하려해서 호족들의 중국 중심 무역을 근절하려던 그런 궁예의 정책과는 정반대로 걷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면
될 거 같다.
내가 고려시대에 태어났으면 왕건을 거열형에 처해서 미트라의 원수를 갚고 거란에 보검 668 자루를 보내서
중국을 멸망시켜달라고 요청할 것이며 기꺼이 거란의 신하가 될 것이다.
왜냐면...
거란의 황족 야율씨는 고구려 고씨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거란은 광개토비를 보면 고구려 광개토의 속민으로 광개토를 따라 정벌에 언제나 앞장선 자들 '비려'족이었다.
광개토는 즉위하자마자 바로 비려를 복속시켰다.
광개토가 이려 이려하며 만주 서쪽 요서... 거대한 요수인 시라무렌하의 상류에 가서
소금 호수 근처에 사는 비려족 수백 텐트에 딱 닿자마자 모용선비의 속민이던 비려족(=선비족)이 싸그리
광개토의 속민이 되었다. 무슨 스타역사유즈맵 개사기 트리거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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