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이 약탈이 생업이라서 고려를 침략했다는건 근시안적 시각임.
거란이 약탈이 생업이라서 고려를 침략했다는건 근시안적 시각임.
==테마 음악=============
https://youtu.be/9PeluiSmHQU?si=A6xtGuVtoCJSAJ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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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왕씨 정권은 어떻게 수립되었나?
궁예는 서기 915년 거란 태조 '야율 아보기'에게 보검을 선물했다.
궁예는 신라 왕자 김씨임에도 자기 선조인 김법민(문무왕)이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를 멸망시킨걸 꾸짖고 (백제 멸망시킨걸 꾸짖지는 않은거 같다.)
그런 연후 순행길에 김법민이 세운 절인 부석사에 들러서 그 절에 걸린 신라 왕의 화상을 칼로 촥! 잘랐는데.
그 신라 왕의 이름이 뭔지는 전혀 안 적혀있고 다만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선조先祖'라고만 적혀있어서
궁예의 아버지하고는 관련없고 오히려 더 먼 조상을 말하는 느낌이다.
부석사가 김법민이 세운 절인걸 감안할 때, 또 부석사 순행하기 전에 궁예가 그런 연설을 한 걸로 봐도
궁예가 신라 문무왕 김법민의 화상을 칼로 동강내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때 패강(浿江 = 황해도 예성강)의 서쪽 지역 호족들 즉 고구려 계통 '호족 다이묘'들은 궁예가 고구려 세력의 지지를 얻으려고 그런 행동을
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나, 궁예는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는 것을 꾸짖은 것이다.
즉 외세를 끌어들여서 자주적이지 않았다는걸 뭐라한 것이다. 놀랍게도 민족주의나 국민의 개념이 없던 그 시절에 궁예는 단재 신채호같은 시각으로
과거사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던 것이다.
궁예는 왕국이 아닌 '황제국'을 자신이 세운 국가의 시스템으로 선언했다.
보통 동양의 나라들은 외왕내제(外王內帝) 즉 지 방구석에선 호족들을 지방 정권들로 삼고 자기는 그 지방 정권들 위에 군림한 황제(皇帝)라 칭하여
자기 자신을 요 임금이나 순 임금에 빗대며 낄낄거리다가 해외로 나가기만 하면 중국에 빌빌거리며 조공바치고 중국의 장군으로 책봉받고선
그 책봉받은 중국의 장군이란 그런 관직 카드를 국내 중뽕 지배층 세력의 지지를 끌어들이는데 사용했다.
왕견,견훤같은 경주 정권을 중앙 정권으로 인정치 않고 반역하고 황제를 칭한 인간쓰레기 도적 놈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궁예는 그러지 않았다. 정말로 '황제국(皇帝國)'을 선언한다.
게다가 궁예는 신라 왕자이다. 그에게 신라는 그저 멸망할 도읍 즉 멸도(滅都)일 뿐이다.
궁예의 도읍은 송악이니까. 나중엔 철원이 되었지만.
도읍을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긴 것도, 자기 자신만의 세력이 있는 곳에 수도를 세우고싶어서라기보다는
송악 호족 왕씨(王氏)가 중뽕이라서 그랬던걸수도있다.
실제로 그 지역 왕씨는 중국 한(漢)나라의 식민지인 낙랑,대방 계통 왕씨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궁예는 최고 지도자의 칭호를 황제(皇帝)라 하지않고(이걸 그대로 써버리면
오리지널 황제국의 조상들인 삼황과 오제와 넓게는 삼왕(하,상,주)에 이르기까지 이것들을 최고 지도자의 모델들로 삼게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주적이지가 않다. 일본처럼 천황이라 하든지 덴노라 하든지 그래야 그나마 나은 것이다.)
'미륵'이라 하여 악인,마구니가 든 간악한 자를 처벌하고 백성을 챙기는 구세주를 표방했고 ,
자주적 연호,자주적 관제,자주적 국호를 썼고
국호를 '마진(큰 동방)' , '태봉(하늘이 영토를 주신 나라)'이라 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어떤 정체성에 편향되지않는
독자적이고 자주적이고 독창적인 한반도 최초의 그런 자주적 국가를 세웠다.
궁예 정권의 장군들 관직 중엔 '마군 장군(馬軍 將軍)'이라 불렸는데. 안동 장군이나 진동 장군이나 영동 장군은 들어봤어도
마군 장군은 처음 들어본다. 아마 궁예 정권의 독창적인 작명(作名) 센스가 아닐런지?
궁예는 중국에 조공 책봉을 구걸하는 사신을 단 하나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과 무역을 안 하지는 않았다. 태봉국 수도 시장에서 중국 당나라 상인들이 들락날락 했기 때문이다.
조공은 무역을 겸하면서 동시에 자국의 중뽕 지배층들(=호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위해 자기 나라의 토산물들과
중국의 선진문물을 서로 거래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선진적 문물도 배우게되는 것이다.
근데 이미 마진 태봉국 자체적으로 선진적인 문물이 충분히 갖춰져있다면 굳이 조공을 가서 중국에 빌빌거릴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서기 915년 궁예는 북방 기마민족인 거란에 보검을 선물했다. 이는 거란이 군사권을 가지고 사방을 두드려패도 좋다는 어떤 암시적인 것이었던거
같고, 그래서 그런지 궁예는 왕건과는 달리 북방으로 진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근데 같은 해 서기 915년 궁예의 부인인 신천 강씨가(왕비가 아니라 부인이다. 이는 궁예가 자칭 미륵이라 하였으므로 왕비를 두지않고
미륵이라 칭하기전의 부인을 계속 곁에 두고있었던걸지도 모른다.) 궁예에게 도리를 어기는 짓을 한다며 심하게 따졌다.
아마 중국을 섬기는 도리를 거스른다 그런 말인거 같다.
궁예 전까지 호족들은 신라 경주 정권과는 별개로 자기들 스스로 외국과 외교 ,무역을 했었을수 있다.
그걸 통해 호족들은 자기들 구역 안에선 거의 왕이나 다름 없었는데. 궁예는 이런 호족 다이묘들을 고운 눈으로 보지는 않은거 같다.
궁예는 중국에 조공,책봉 구걸을 하지않음으로서 동시에 호족들의 조공,책봉 길도 가로 막고
선진 문물 유입 루트를 거란을 통해서만 유지했다. 오히려 거란은 통해 들어오는 서역 문물이 그동안 지겹게 봐오던 중국 당나라 문물보다는
더 좋을 것이다. 이는 궁예 정권이 선진 문물 유입 루트를 독점한게 되고 이는 호족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을 것이며
결국 궁예 정권은 내분이 일어나 멸망한 것이다. 그 내분의 주도자는 왕건이 아니라 다름 아닌 마군 장군 환선길이었다.
환선길이 왜 반역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궁예가 신천 강씨를 죽이고 그 두 자식도 죽여서 막 나간 것과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고려사,삼국사기 도적전 궁예 편에 적힌 내용을 비판 없이 너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거다.
사실은 신천 강씨가 두 자식과 함께 반역을 일으켰고, 궁예는 바로 잡혀버렸고,
마군 장군 환선길이 신천 강씨와 두 자식을 죽이고, 정신병에 걸려버린 궁예를 부양의 들의 논밭으로 보내 농사하게하며 정신병을 치료시킨게
아닐까?
궁예에게 다른 부인은 또 없었을까? 잘 모르겠다.
환선길,이흔암 세력은 시중 왕건을 새로운 왕에 올린다.
왕건은 왕이 되자마자 국호를 고려라 바꾸고 궁예가 감히 함부로 황제를 칭했던걸 꾸짖는다.
독자적 연호는 쓰고 계속 황제라 칭했으나, 중국에 조공하고 책봉받는 외교를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자기 나라 땅은 한나라 식민지 사군(四郡 : 낙랑,진번,임둔,현토) 임을 말한다.
그리고 왕건은 간사하게 최응 등 학사 세력과 함께 환선길을 유인해 암살했다.
경주 최씨 최응 등 학사 세력은 중국 대륙 하북에서 새롭게 떠오른 정권인 후당(後唐)에 조공하고 책봉받아 후당의 선진 문물을 냠냠 빨아먹고싶어했던거같다.
환선길을 죽인 왕건은 이흔암의 반격도 진압하고 죽였다. 그러자 청주 지역 수많은 호족들이 통째로 견훤에게 투항하고 왕건 정권은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세월이 흘러 후삼국 통일 후 왕건은 거란에게 낙타들을 선물받았으나 낙타들을 전부 굶겨죽이고 사신들을 전부 섬으로 유배보냈는데
이런 행동은 개싸가지 없는 행동이다. 이런건 "너희들과 무역 안해 꺼져" 이런 뜻이 있는거다.
비록 후에 고려가 거란에 개쫄고 조공하고 책봉받았지만 서로간에 뭔가 어떤 국제 무역적으로 마찰이 있었을 수 있다.
그로 인해 불만이 쌓이다가 결국 전쟁이 일어난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좀 동남아,베트남,일본,북한,몽골,중국을 멸시하고 깔보지마
너무 우리가 개기다가 얻어쳐터지는 수가 있는거다.
우리가 힘세다고 자만하고 방심하다간 강조처럼 잡히게 되는거다.
그래서 성인(聖人)은 병(兵)을 흉(凶)한걸로 보고 만지려고 하지않다가 간악한 자가 나타나면 그걸 쥐어서 간악한 자가
해외에 있든 자기 나라에 있든 쳐서 정벌,토벌,주살을 실시하는 것이며 평상시엔 덕을 닦아 도를 기르는데 연마하는 것이다.
병법에 이르듯 자기 자신을 다른 나라에 낮추는건 결코 무조건적으로 빌빌거리는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상대를 높여주고 챙겨주는 것이다.
그것이 천하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자기 나라 안에선 황제를 칭해도 해외로 나가면 다른 나라 장군이 되고싶다고 말해서 다른 나라의 신의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정도가 지나치면 완벽한 졸개가 되어버려서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궁예처럼 미륵을 칭해서 선지자 스타일을 표방하며 거란에게 보검을 선물해서 이걸로 간악한 종족들을 쳐쓸으라고 말하는
뭐 그런게 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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