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동천왕과 고조선 계승

 고구려 동천왕과 고조선 계승


서기 3세기 중반 고구려 동천욍이 낙랑 대방 호족들에게 초대받아 커맨드센터를 환도성에서 평양성 왕험의 저택으로 옮겼고 ,남쪽 마한 신분고국의 준동과 지랄병을 막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 마한과 진한은 고구려의 속민(屬民)이 되었다. 동천왕의 이름이 위거,위궁,우위거이니 고조선의 왕호 우거를 이어받은 것이니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한게 아니면 도대체 누구를 계승했겠나 그리고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편을 보면 고구려의 남쪽에 조선이 있다고 나온다. 이미 평안도 황해도가 고구려,위나라 둘 다에 양다리 낀거. 이런 양다리 끼기 현상은 고구려 왕 건무(建武=영류왕) 때까지 계속 된다.


삼국사기가 삼국지 동이전보다 연도 늦으니 믿을수없다는건

식민사학의 논리이다.


삼국사기의 기록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일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적다보니 마치 모순되는거같지만 머리를 굴려보면 사실 같은 시기에 정말로 


두 사건 다 일어났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사려깊게 생각하는 군자와 하늘이 주시는 지혜의 빛으로 알 수 있으니 


한자 조금 알고 삽으로 유물 묻힌 구덩이 좀 파봤다고 잘난체하며 건방떠는 소인이 어찌 알랴?


그래서 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소인은 궁궐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제 놈이 태어난 마을을 벗어나지못하게한 것이니 

하,상,주 3왕의 법도가 지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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