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 김치는 오랜 역사를 지닌 발효 식품으로, 그 기원은 고대 중국 산동반도에 거주했던 동이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동이족(東夷族)은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3000년 사이 신석기 시대의 '다원커우' 문화, 기원전 2500년경의 '룽산 문화', 그리고 기원전 2000년경의 '악석' 문화(岳石文化, Yueshi culture)의 후손으로, 중국 최초의 왕조인 상(商) 나라의 왕족과 문화적, 혈통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대 문헌에서의 김치 기록 『시경』: 김치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 중 하나로, "밭두둑에 외(萵苣, 일종의 채소)가 열렸다. 외를 깎아 저(菹, 발효된 채소)를 담그자"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씨춘추』: 공자(은나라 후손)가 저를 먹으며 콧등을 찌푸렸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며, 김치의 역사적 중요성을 더합니다. 『석명』: 채소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면 젖산이 생성되고, 이 젖산이 채소가 짓무르는 것을 방지한다고 설명하여, 저의 발효 과정과 중요성을 밝힙니다. 『주례』: 한나라 시대의 기록으로, 순무, 순채, 아욱, 미나리, 죽순 등 일곱 가지 저를 만들고 관리하는 관청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김치의 다양성과 발전 고대 중국 산동반도의 요리서인 『제민요술』에는 쌀가루로 담그는 김치를 포함하여 다양한 종류의 김치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는 김치가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발효되어 왔음을 보여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다양성과 발전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결론 김치는 단순한 식품을 넘어서, 오랜 역사와 깊은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김치의 역사는 다양한 문화와 시대를 거치며 발전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발효 식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대 문헌에 기록된 김치의 제조 방법과 그 의미는, 김치가 갖는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고구려 동천왕이 중국 식민지 낙랑군의 총독부를 고구려의 새 도읍으로 선포 // 고구려 동천왕 시대의 역사적 변화와 중요 사건들 고구려 도읍의 이전 시대적 배경: 서기 247년, 고구려 동천왕 재위 21년에 도달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고구려가 중요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도읍 이전: 동천왕은 환도성이 전란을 겪은 후, 더 이상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평양은 선인 왕검의 땅으로, 이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마한과 진한 부락의 정치적 동향 서기 246년의 '기리영 회맹' 사건: 마한과 진한 부락의 대족장들이 황해도 대방군의 기리영에서 모여, 낙랑태수와 대방태수에게 불평등한 무역과 직무 유기 문제를 제기하며 회맹을 열었습니다. 대방군의 창설: 서기 3세기 초반 공손강은 낙랑군의 일부를 떼어내 대방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공손씨의 대방군은 마한 족장들을 읍의 군장으로 만들어 한나라 천자를 기만하는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위나라와의 관계 변화 위나라의 개입: 서기 238년 명제 황제는 사마중달을 육군 총사령관으로 임명. 보병 기병 4만을 보내 요동반도의 공손씨 정권을 정벌하면서 한편으론 낙랑태수와 대방태수를 임명하여 해군으로 몰래 바다를 건너게하여 낙랑군,대방군을 무혈 입성으로 접수했습니다. 위나라는 대방군에 사는 마한의 군장들에게 중국의 우수한 관모,관복,도장 등 굿즈들을 휙 휙 휙 뿌려서 공손씨가 아니라 위나라를 따르게 했습니다. 소제 황제의 전략: 소제 황제는 대방군을 약화시키고 낙랑군을 강화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한과 진한 족장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독립 선언과 후속 사건들 독립 선언: 기리영에서 마한의 신분고국 신지가 대방태수를 참살하고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는 마한과 진한 부락들이 더 이상 위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낙랑군과 대방군이 합심하여 한국 반란군을 멸하였다고 기록...
이씨조선은 국뽕도 중뽕도 일뽕도 아님. 이씨조선은 군자의 나라이고 예의와 의관 법도가 중국에서 나왔으니 정통 중국을 천자국으로 모신다. 큰 나라를 섬기며 작은 나라나 잘 가꾸고 다스리는게 올바른 질서를 찾는 것이라 믿었다. 무슨 소인들마냥 큰 나라를 섬겨야 살아남으니까 끙..하며 그런게 아님. 그건 고려지. 조선이 아님. 조선 왕 숙종은 울릉도 개나 물어가라 하고 일본에 주려고 했다. 왜냐면 어차피 거주 금지 구역으로 만든 빈 땅인데. 그냥 일본에 주면 되는거 아님? 이럼. 근데 신하들이 그건 안된다하고 반대해서 흠... 하고 그렇게는 하지않고 일본에 편지를 이렇게 써서 보냄. "동해 바다에 조선 땅 울릉도와 일본 땅 죽도(=타케시마=울릉도)가 있습니다." 근데 이렇게 편지 보낸게 더 문제를 꼬이게 만들고, 결국 모든 사신을 알게 된 도쿠가와 쇼군은 대노하고 "야! 울릉도=죽도=타케시마 는 조선 땅이니까 건너가는 놈 있으면 죽여버린다!" 이러고 문제를 끝냄. 숙종의 외교를 봐도 알 수 있듯 조선은 국뽕도 일뽕도 중뽕도 아니다. 자존심보다는 명분과 이익을 고루 따지며 무엇이 나라를 위한 길인가를 따지며 외교한다. 그것이 '사대 교린'이다. 큰 나라는 당연히 섬겨야하며, 포악한 야만족을 상대론 꾸짖고, 이웃나라 상대로는 친하게 지낸다. 지금 한국처럼 일본을 라이벌로 여기고 으르릉대며 독도같은 쪼그마난 암초 일본이 먼저 먹은게 맞는데도 무조건 우기려 들고 으르르르릉 아르르릉...거리다가 중국 북한이 야!하면 깨갱함. 존나 웃긴 외교 모양새임. 그러면 명분에서도 털리고 이익에서도 털리고 항상 미국 바지 가랑이 잡지않고서는 못 버티는거다. 일본이 먼저 먹은게 맞다면 주되, 그냥 주지는 말고 경찰 수비대 , 군대 다 치워버려. 그리고서 일본이 먹나 안 먹나 보는거야. 이런게 바로 성리학적 외교다. 일본 정부가 원하는건 독도가 아니다. 독도를 통해서 혐한 감정 일으켜서 일본인들을 단합시키고 다시 군대를 가진 나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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