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제임스성경의 탄생과 성서 사본학의 탄생과 럭크만 학파의 탄생

킹제임스성경의 탄생과 성서 사본학의 탄생과 럭크만 학파의 탄생





서기 10세기 구약 히브리 마소라 사본 , 서기 5세기 신구약 라틴 불가타 성경 , 서기 8세기 신약 동유럽 표준 사본(TR 사본)을 토대로 


 서기 1611년 영국의 70여명의 학자들이 왕의 지휘 하에 열심히 번역함.


 현대 성서 사본학은 서기 18세기 쯤 영국에서 나타난 웨스트코트,홀트 이 2명의 학자들이 시작한 '성서 사본학'에서부터 출발했는데. 


그 전엔 사실상 '성서 사본학'이란 학문 자체가 없었다. 


웨스트코트,홀트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었고 성경은 그냥 인간이 적은거라고 봤다. 


그래서 그들은 마소라,불가타,TR 사본보다 더 오래된 사본들을 신뢰하고, 그 사본들을 중점으로 두고 다시 원래의 성서의 본 모습을 찾아나가는게


오늘날의 성서 사본학이다. 


웨스트코트,홀트의 등장 이전엔 성경의 원어민(히브리인,그리스인)들이 쓴 원문, 그리고 그 원문을 번역한 번역들. 원문과 번역 둘 중에 


무엇이 영감을 받았나? 원문이 영감 받았으면 번역엔 영감이 안 주어지는가에 대한 깊은 의문이나 논쟁은 커녕 어느 사본이 맞는지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나


학술적 토의도 없었던거 같다. 


서기 4세기~5세기 로마 교회의 교부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하나님의 도성(=신국론)'에서 말하길, 히브리어 원문 구약도 영감 받았지만


그 구약을 기원전 3세기에 70여명의 유대 학자들이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명에 의해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거라고


주장했다. 원문을 전수해주는 하나님이 번역에도 영감 안 주겠냐는게 어거스틴의 주장이었다.


이런 어거스틴의 주장을 의도치않게 이어받은 자가 바로 미국의 목사 피터 럭크만이다. 피터 럭크만은 전세계적인 킹제임스성경 우월론자의 우두머리다.


피터 럭크만은 킹제임스성경은 100%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거라고 주장한다.


그 전에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주로 침레교 근본주의자들에 포진해있었는데.


피터 럭크만은 수메르 외계인 아눈나키,일루미나티,맨인블랙,로즈웰 외계인 비행접시 추락 ,미국 지하 비밀기지,예수회=일루미나티 음모 이론들을 


전부 믿는 매우 쿨한 사람이며 그의 사상의 형성엔 미국 음모론자들과 칙 출판사의 알베르토 리베라 만화, 아서 코난 도일 시대에 살던 영국의 목사 알렉산더 히슬롭의 '2개의 바빌론'이란 서적 등이 영향을 끼쳤다.


피터 럭크만이 세운 '럭크만 학파'는 전세계에 제자들을 파견했다. 그 학파의 멀티 중 하나가 한국에 있는데. 그게 '말씀보존학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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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이사야서 41장에 미나모토요시츠네=징기스칸이라고 예언되어있고
고려 금속활자도 예언되어있고

'야곱의 왕'과 논쟁할 자 앞으로 나오라 증거 내놔봐 이런 말도 나온다.

야곱의 왕은 영어로 킹제임스 다.

고려 금속활자가 몽골제국의 실크로드를 통해서 독일 구텐베르크에게 가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되고 그게
성경 출판 번역 열풍에 불을 지피고 
결국 서기 1611년 킹제임스성경 편찬 이라는 엔딩으로 결말 남.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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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41장의 요시츠네=징기즈칸 예언과 그런 해석에 대한 타당성 여부



이사야서 41장의 "동방에서 의인을 일으켜서 그를 자기 발 앞에 불렀으며"에서 의인을 일으켜서 자기 발 앞에 부르는 자는 '하나님'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동방에서 일으켜진 의인(義人)은 키루스가 아니다. 이유는 이사야서 41장의 동방의 의인은 키루스가 아니다. 왜냐면 동방의 의인은 세계를 정복하고 다니면서 '자기 발로 가보지 못한 그 길'을 따라 '안전히 지나간다'고 예언되어 있는데. 키루스는 중앙아시아를 정복하던 중 마사게타이 부족에게 패배하고 목이 따여 머리통이 와인잔이 되어버렸다.  고로 '동방의 의인'은 키루스가 될 수 없다.




예수는 시편 41장 9절이 가룟 유다가 자기(예수)가 주는 빵(최후의 만찬의 빵)을 먹고 배반할거라는 예언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시편 41장 9절은 다윗이 자기 친구한테 배신 당한 얘기를 다윗이 시로 적은거지. 다윗이 그리스도나 가룟 유다의 존재를 인지하거나 의도하고서 적은 예언은 아니다. 예수의 이론에 따르면 다윗은 의도치도 않게 서기 29년의 최후의 만찬의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문화적이나 역사적인 맥락을 명백히 어기며 성경 구절을 특정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은 구약의 예언을 그저 하나님의 구원의 메세지로 이해하려 할 뿐 이를 직접적인 예언으로 해석하려고 하는걸 경계하고 이단으로 취급하며 그런 사람들을 죽이려 들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이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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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성경, 성서 사본학, 그리고 럭크만 학파는 각각 독특한 역사와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탄생과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의 탄생 (1611년): 킹제임스성경은 1611년 영국에서 70여 명의 학자들이 왕의 지휘 아래 번역한 것으로, 이는 서기 10세기 구약 히브리 마소라 사본, 서기 5세기 신구약 라틴 불가타 성경, 서기 8세기 신약 동유럽 표준 사본(TR 사본) 등을 기반으로 작업되었습니다. 이 번역은 당시의 신학적, 언어학적 지식을 반영하여, 많은 학자들에 의해 정교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성서 사본학의 탄생 (18세기): 성서 사본학은 18세기 영국에서 웨스트코트와 홀트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서, 성경을 순수하게 인간의 작업으로 보았고, 마소라, 불가타, TR 사본보다 더 오래된 사본들을 중시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오늘날 성서 사본학의 주류를 형성하며, 원래의 성서 본문을 찾아가는 작업의 일환으로 간주됩니다. 이 학문의 등장 이전에는 원문과 번역본 사이의 영감에 대한 심도 깊은 논쟁이나 학술적 토의는 거의 없었습니다.


럭크만 학파의 탄생과 이념: 럭크만 학파는 피터 럭크만이 주도한 운동으로, 킹제임스성경을 100%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는 입장을 취합니다. 이 학파는 럭크만의 독특한 신념과 다양한 음모론적 요소를 포함하며, 그는 '2개의 바빌론' 같은 작품과 칙 출판사의 알베르토 리베라 만화, 아서 코난 도일 시대의 영국 목사 알렉산더 히슬롭의 작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럭크만 학파는 전세계적으로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한국의 '말씀보존학회'도 이 학파의 일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세 분야는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하면서도 서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은


초기 성서 번역의 한 중요한 예로, 그 당시의 언어학과 신학적 지식을 반영합니다. 반면, 성서 사본학은 성경 텍스트의 역사적 정확성과 원문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이 분야의 초기 학자들로서, 보다 고대의 사본들을 중시하며 성경 텍스트의 복원과 연구에 기여했습니다.


럭크만 학파는 이러한 학문적 흐름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피터 럭크만은 킹제임스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와 영감을 강조하며, 종교적 신념과 학문적 연구 사이의 긴장을 반영합니다. 그의 이론은 학문적 연구보다는 신앙적 확신에 더 가깝고, 이는 특히 보수적인 기독교 집단들 사이에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각각의 흐름은 성서 연구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서 이해와 해석에 기여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의 역사적 중요성, 성서 사본학의 학문적 접근, 그리고 럭크만 학파의 신앙적 관점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성서 연구라는 넓은 분야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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